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양장)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정영목 | 이레 | 20040726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여행지에 대한 서적은 범람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책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매우 드문 여행에 대한 철학서적이다. 일상속에서 반복된 생활을 사는 사람들은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 가면, 일상에서 느끼는 너저분한 감정이나 자질구레함, 걱정에서 탈출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림설명 : 윌리엄 호지스 <다시찾은 타히티> 1776년
이 책의 <출발>은 여행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의 주인공 데제생트 공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매우 염세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로, 어느날 여행에 대한 동경으로 하인 몇명을 거느리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은 일상의 또다른 반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 데제셍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 경험에서는 우리가 보러 간 것이 우리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 때문에 희석되어 버린다. 우리는 근심스러운 미래에 의해 현재로 부터 끌려나온다. 당혹스러운 신체적, 심리적 요구들 때문에 미하걱 요소들의 감상은 방해를 받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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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호텔을 건축하고, 만을 준설하는 등 엄청난 프로젝트들을 이루어내면서도, 기본적인 심리적 매듭 몇개로 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울화가 치밀때면 문명의 이점들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 이런 정신적 매듭들이 얼마나 처치곤란인지 생각하다보면, 고대 철학자들의 준엄하면서도 비꼬는 식의 지혜가 떠오른다. 그들은 번영과 세련으로부터 물러나 통이나 진흙 오두막 속에 살면서, 행복의 핵심적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나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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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왜 저자가 책 처음부터 김새는 소리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여행에 대해서 잔뜩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갔을 독자들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 대중들 가운데서 "그러면 여행을 가지 말라는 말인가요?"하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물론, 저자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여행을 떠나라! 그러나 여행의 기쁨은 여행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행복의 핵심은 물질적이고 미학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서두는 다소 장황하고, 누군가가 이미 했던 상투적인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떠나면서 항상 잊어버리고, 목격한 여행지의 풍경에 너무나 쉽게 실망해 버린다.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를 읽고, 경주 박물관에 마당에 있는 에밀레종이나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대해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가, 자신이 본 것이 단지 마당에 묶여있는 거대한 쇠덩어리에 불과했다거나, 탑과 석굴암에 대해 이렇다할 아름다움을 못느꼈을 때의 실망감과 당혹감을 경험해본적 있을 것이다. 그때는 유홍준씨가 말한대로, "아는만큼 보인다"고 자신의 무식함을 탓하며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집안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풍경이라도 '잘'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나면,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보다, 감성적으로 잘 느껴야 여행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여행에 대한 가장 큰 철학이, 이 책의 몇줄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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