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예언자>에 이은 또 한 권의 영적 울림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씌여 있다. 칼릴 지브란의 글을 읽어본다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글은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의 글은 성인이 자신의 손으로 쓴 훌륭한 경전이다. 그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면, 그리하여 그의 책이 경전이 된다면 그의 책은 성인이 자신이 직접 쓴 최초의 경전이 되리라 생각된다.
<지혜여 나는 누구입니까?>의 영어제목은 이다. 직역을 하자면, <주인의 목소리>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 주인은 지도자로 의역할 수도 있겠지만, 은유적인 표현으로 주인은 지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렇게 보자면 <지혜의 목소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매우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은 소설적 형태를 띠고 있고, 뒷부분은 잠언집처럼 되어있다. 파트1은 알무타다와 그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알무타다의 스승은 며칠 동안 근심에 쌓여있었다. 스승의 알 수 없는 슬픔에 제자는 궁금하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않는다. 스승이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스승은 과거에 꿈에서 젊은 여인을 보게 되고, 그 여인을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스승이 간 곳은 베네치아이다. 스승은 베네치아의 시장을 만나지만, 베네치아의 시장은 그를 기쁘게 맞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딸이 그 전날 죽은 것이다. 스승은 꿈속에서 봤던 그녀가 시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스승은 베네치아에서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오고, 오랜 침묵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진리를 깨우쳐갔다. 스승은 이야기를 끝내고, 보름 뒤 병에 걸려 죽는다. 그리고 알무타다는 스승의 뒤를 이어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파한다. 그의 가르침은 깊은 울림을 가져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그의 명성은 하늘을 치솟게 된다. 명성은 헛된 것이나, 그의 가르침은 결코 헛되지 않다. 파트 2는 이러한 알무타다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알무타다의 존재는 지브란이 만든 허구적인 인물이다. 즉, 알무타다의 말은 지브란의 말이 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지브란의 모습은 알무타다보다는 그의 스승에 가깝다. 지브란은 프랑스인인 미셀린이라는 여자를 좋아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지브란은 평생 독신으로 사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슬픔이 알무타다의 스승에 투영되어 있다.
파트 2는 다시 20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 삶에 대하여
- 인간의 범에 따른 순교에 대하여
- 생각과 명상에 대하여
- 첫 눈길에 대하여
- 첫 입맞춤에 대하여
- 결혼에 대하여
- 인간의 신성에 대하여
- 이성과 지식에 대하여
- 음악에 대하여
- 지혜에 대하여
- 사랑과 평등에 대하여
- 스승의 메시지
-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 사랑과 젊음
- 지혜와 나
- 두 도시
- 자연과 사람
- 내가 사랑한 여인
- 젊음과 희망
- 부활
파트 2의 부분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굳이 비교한다면, 니체의 것이 장편서사시라면 이 책은 짧은 서정시 같다. 다음은 파트2의 첫번째 장 삶에 대하여의 한 부분이다.
삶은 바다에 외로이 떠있는 섬과 같다. 그 섬에서는 바위가 희망이고, 나무가 꿈이다. 꽃은 외로움에 떨고, 개울은 목말라한다. 형제들이여, 너희 삶은 다른 섬들이나 다른 땅들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이다. 다른 땅을 향해 너희 해안을 떠나는 배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너희 해안을 찾아오는 선단이 아무리 많더라도, 너희는 외로움과 싸우며 행복을 갈망하는 외로운 섬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기에 형제들의 연민과 이해를 구할 수 없구나. (…..중략……) 형제여, 네 영혼의 삶은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외로움과 고독함이 없다면 너는 네가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리라. 이런 외로움과 고독함이 없다면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네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고 믿게 되리라. 너의 얼굴을 보면서 네 얼굴이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이라 생각하리라. (p56~58)
<삶에 대하여>에서 말하는 것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적 고독이다. 그 고독은 도저히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독립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첫번째 장의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구절이나, <도마복음>의 1마리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처럼, 독립적 자아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이다. 나의 지나친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