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떠나는 파리 문화기행

서울하면 떠오르는 건 온통 도시적인 이미지들 뿐이다. 거기에는 예술이나 자유로운 영혼이 머물만한 장소가 없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미가 없는 도시는 미완의 도시이고, 타락의 도시이다. 나는 서울에 오래 머물러 본적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만한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서울과 파리를 대조해 본다면 누구나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서울은 오래된 건물보다 새로 지은 건물이 많다는 점, 고층빌딩이 많다는 점, 아파트가 주택보다 많다는 점, 한국 전통문화보다 수입문화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만 봐도 서울은 파리와 대조된다. 파리는 새 건물이 적다. 수백년 된 건물을 실내만 수리해서 쓴다. 따라서 고층빌딩이 없다. 심지어 지상에는 주유소도 찾아볼 수가 없다. 주유소가 고풍스로운 도시의 미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지하주차장에 내려가야지 찾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수백년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다. 수입된 문화는 비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말 프랑스다운 도시이다.
이 책은 와인에 대한 책이면서, 또한 파리의 문화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와인과 프랑스 문화의 특징, 사람들의 취향, 패션, 생각들, 기호들을 연결시켜서 한권의 파리 소개서를 만들었다. 저자는 원래 프랑스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포두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와인 전문가가 되었다. 저자는 오랜 유학기간 동안 보고 느꼈던 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고급와인처럼 숙성시켜서 시각이 즐거운 책을 만들었다.

저자는 파리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커피문화, 길거리 풍경, 결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생각, 패션, 와인, 식습관, 대중교통, 자국어 사랑…….. . 이 책의 이야기를 작은 지면에서 모두 하는 것은 힘든일일 뿐더러, 낭비이다. 핵심만 살펴보자면, 우선 머릿말을 살펴야 할 것이다.
혁명을 통해 스스로 구체제를 뒤집어 엎은 파리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어떤 도덕적 가치도 이데올로기도 그저 다양한 여럿 중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랑 다르면 그것은 틀린것틀린 것 사고에 갇혀 살아왔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은 철저히 배제하거나, 고쳐주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한다. 게다가 사회의 대다수에 묻어가지 않으면 너무나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중략……) 파리는 와인과도 닮았다. 한 병의 와인을 놓고 "이것은 맛이 있어." "저것은 맛이 없어." 이렇게 속단하다 보면 와인은 얼음공주처럼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맛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마법의 벽을 뚫고 들어가 보면 그 안에는 물과 공기, 대지, 그리고 인간이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머리말 중에서)
머리말의 핵심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똘레랑스이다. 우리에게도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해당하는 관용정신이라는 게 있었을 것이다. 그 정신이 언제부터 이 사회에서 없어졌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것을 자꾸 틀린것이라고 말한다. "틀렸어."가 습관처럼 입에 붙어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생각이 비슷한지 다른지 검열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끊임없이 없애려고 하고, 다른 소수의 생각도 없애려고 하는 점이다.
왜 서울에는 오래된 전통 건축보다 시멘트로 된 현대의 건축물이 많은 것인가? 그것은 우리 것이 미국의 것과 다른 것을 수치로 여기는 싸구려 정신 때문이다. 왜 서울에는 전통문화보다 왜래문화가 많은 것인가? 우리 스스로가 미국 것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 것을 죽이고 미국 것만 따라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개성을 싸구려 시멘트로 떼워버린 것이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
와인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파리 여자들은 와인 때문에 날씬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와인 사랑은 각별하다. 우리는 낮에 술마시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프랑스인들은 식사와 함께 하는 것이 와인이다. 이 책에는 프랑스인은 식사 중에는 드라이한 와인을 선호하고, 디저트에는 스위트 와인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해서 몸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우리가 주의할 점은 프랑스 인들은 우리처럼 한번에 많이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래 삼각형 그림은 와인등급에 대한 그림이다. 아래부터 뱅드타블(Vin de table), 뱅드페이, V.D.Q.S, AOC 등급으로 나눠져 있다. 고급와인은 당연히 AOC 등급이고, VDQS는 생산량이 적어서 프랑스 자국내에서만 소비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포도주등급은 뱅드페이나 뱅드타블이다. 최고 등급 포도주를 찾는 사람이 무조건 속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포도주를 좋아한다면 저렴한 포도주나 고급 포도주냐를 구별하는 것은 별 의미 없는 것 같다. 상식으로 아는 건 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 와인은 라벨이 불친절하다. 와인라벨만 봐서는 와인의 맛이나 와인의 성분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와인이 생산된 지방과 생산된 농장 와인 생산방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지중해 쪽에 가까울 수록 와인의 당도가 높고, 북쪽일 수록 당도가 약하다고 한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은 드라이 하고,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와인은 보드카나 위스키와 생산년도 표기방식이 다르다. 보드카나 위스키, 칼바도스 같은 술은 오크통에 담긴 년도가 표기된 반면에 와인은 농장에서 포도를 수확한 시기이다. 와인에 빈티지가 1995라면 1995년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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