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2002년도 무렵에 김훈이 쓴 수필 모음이다. 당시에는 여당이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였다. 이 책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김대중 정부에 대한 쓴소리가 많다. 그 쓴소리는 아무런 근거없는 비판이 아니고,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김훈의 권력에 대한 비판은 현재(2010년)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맥이 닿는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서 민주주의 사회는 과거보다 더 발전하지 못했으며, 반대로 퇴행하고 있다. 그 퇴행의 원인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 보다 진보의 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글에 실린 김훈의 사상은 방대하다. 그리하여, 나의 짧은 소개로 이 책을 대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훌륭한 코끼리의 상아가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지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상아의 소재나, 코끼리의 다른 부위에 대해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길 바란다.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라는 제목의 글은 역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역설이 아니라, 언론의 현주소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언론은 너무나 거대한 권력이 되었다. 그래서 언론은 썩은 권력이 되었고, 본래의 건전한 권력이 되려면 스스로 족쇄를 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1차적 족쇄는 자기검열이며, 그 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행위가 아니라,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통제행위이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나, 치열한 언론의식으로 노력해야 할일이다(김훈은 책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이 글은 김대중 정부 말기에, 당시 정권이 언론개혁을 추진하려는 배경에서 씌어졌다. 당시에는 언론 개혁이 편집과 경영을 분리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논의가 되었는데, 김훈은 그것에 대해 반대한다.
 편집된 독립을 위한 논의들은 언론의 자유를 확실히 법제적으로 보장하고, 그 결실로서 언론의 공정성, 공익성, 신뢰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부분은 이 방향과는 반대 방향의 개혁이다.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는 쪽으로의 개혁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이미 권력화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축소하고 견제하는 방향의 언론 개혁의 핵심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책, p94)

 김훈의 말처럼 한국 언론의 문제는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이 되어 철필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비단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등과 같은 보수언론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같은 공룡신문이 언론시장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이 공룡언론이 멸종되면 다른 언론 권력이 이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고, 문제는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방송언론은 더욱 심각하다. 삼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삼사의 여론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KBS와 MBC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진보권력의 치세 10년동안, 이 언론을 정부영향력으로부터 왜 떼어놓지 못했는지 의문이 간다. 신문권력을 어찌하지 못했더라도, KBS와 MBC는 여당에서 어찌할 수 있는 언론사가 아닌가. 진보정권에서 KBS와 MBC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자립적인 방송사가 되었다면, 이명박 정권에서 덜 친정권적이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신창원 사태>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출한 신창원이 1999년 7월에 붙잡혔으므로, 이 글은 지금과 약 11년의 시간차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비판하는 경찰의 행태는 현재도 유효하다. 김훈은 처음에는 무능한 경찰을 비판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신창원을 2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잡지 못하다가 한 시민의 제보로 겨우 잡을 수 있었다. 탈주범을 경찰이 잡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경찰은 이 당연한 일로, 포상잔치를 했다. 경찰관 6명이 특진을 했고, 48명이 표창을 받았다.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김훈의 비꼼은 매우 깔끔하다.

기초적인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해낸 것이 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인가? 기초가 도무지 작동되지 않는 사회에서, 기초를 정상적으로 작동시켜서 문제를 해결한 공적은 실로 찬연하다. 그러니 저 일선 경찰관들에 대한 대규모 포상은 나무랄 데 없이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포상은 기초를 배반해버린 사회와 경찰조직 전체에 대한 상징적인 견책이며 통렬한 야유로 보이기도 한다. (같은책, p122)

또한, 경찰은 상대방이 아무리 범죄자의 신분일지라도, 사람을 짐승처럼 다뤄서는 안될 것이다. 범죄자의 죄가 아무리 심할지라도, 그 또한 인간이므로, 짐승처럼 다룬다면, 그 또한 또다른 범죄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찰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신의 일기에 따르면, 흉악범인 자신에게도 '1퍼센트쯤'의 인간성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말도 빈말은 아닌 듯 싶다. 검거 직후 결박된 그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웃옷을 치켜올려서 등의 문신을 보여주는 형사들에게 분노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분노의 표정은 그가 말한 '1퍼센트의 인간성'에 대한 증거다. 인간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다. 어찌 수사관들이 노획품의 성능을 자랑하듯 만인이 보는 앞에서 피의자의 옷을 들추고 껍데기를 벗겨서 그 알몸을 현장에서 보여줄 수가 있는가. 그의 문신을 현장발 생중계 화면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고 텔레비전의 알릴 의무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는 그의 등판에 문신이 있다는 수사책임자의 신뢰성 있는 확인으로 족하다. (같은 책, 123,124)

 이 글이 씌어진지 11년이 지난,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공권력에 대한 인권은 더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용산참사로 대표되는 철거민 진압, 촛불문화제 진압, 전교조 탄압, 노동자 파업 탄압…… . 현 정권이 지난 2년동안 가장 열심히 한 일은 환경파괴와 인간 탄압이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 서울 양천 경찰서 고문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경찰관이 피의자를 조사할 때, 피의자의 입에 휴지를 넣고 재갈을 물린뒤 발로 밟고, 날개 꺽기를 하는 등 잔인한 고문을 하여, 자백을 강요한 사건이다.

 경찰의 수법도 잔인하긴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그것을 다룬 언론사들의 태도이다. 그렇게 잔인한 행위를 한 이유가 단지, "실적을 많이 내려다가 그런 짓을 저지른 것 같다"이다. 여기에는 인간을 짐승처럼 다루는 패륜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이 없다. 진보라고 불리는 언론인들의 심장에도 더 이상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는 것인가.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현 정권에서는 거의 기능을 못한다는 점이다. 국가 인권위원회는 김대중 정권때 만들어진 위원회로 법무부장관의 지배를 받는 특수법인적 성격을 띄고 있는 위원회로, 탄생때부터 인권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실질적인 힘은 없는 조직이다. 그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는 '권고'가 전부이다. 권고는 사실행위일 뿐, 아무런 법적인 구속이 없다. 인권위는 진보정권에서는 권고로도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현정권에서는 식물과 다름없다. 즉 현대사회는 패륜적인 공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인간을 학대하고 인간을 마소처럼 취급하는 사회적 태도가 쌓이고 쌓여서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말은 유명한 사회학자의 말도 아니고, 진보 언론인의 말도 아닌 신창원이 한 말이다. 이 말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우리사회에서 유효할 것이다. 김길태, 조두순, 강호순, 유영철, 김수철……… . 다음엔 한 선량한 사람이 어떤 끔찍한 모습의 범죄자로 망가져서 우리에게 나타날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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